
지난 글에서 이야기했지.
양자역학의 다세계 해석(Many Worlds Interpretation)에 따르면 우리는 선택할 때마다 하나의 가능성만 남기고 나머지를 없애는 게 아니라, 각각 다른 세계로 분기된다고.
쉽게 말하면 지금의 나는 수많은 가능성 중 하나의 버전을 살고 있는 거야.
근데 이 이야기를 하면 꼭 나오는 질문이 있어.
“그럼 내가 잘못된 선택을 했다면?”
솔직히 말하면 나도 이게 가장 궁금했어.
사주를 공부해도,
점성술을 봐도,
끌어당김의 법칙을 공부해도,
결국 마지막에 남는 질문은 이것이었거든.
“그래서 지금 내가 잘 가고 있는 거 맞아?”
그런데 생각해보면 여기에는 한 가지 함정이 있어.
우리는 항상 현재의 현실과 선택하지 않은 현실을 비교한다는 거야.
우리는 현실과 상상을 비교하고 있다
예를 들어 어떤 사람이 창업을 했다고 해보자.
열심히 준비했고,
잠도 줄여가며 일했고,
자신이 가진 돈도 투자했어.
그런데 결과는 실패였어.
그럼 자연스럽게 이런 생각이 들겠지.
“그때 그냥 회사를 계속 다녔어야 했는데.”
근데 정말 그럴까?
회사를 계속 다녔다면 더 행복했을까?
더 많은 돈을 벌었을까?
더 좋은 사람들을 만났을까?
사실 아무도 몰라.
우리는 창업에 실패한 현실은 알고 있지만, 직장에 남았을 때의 현실은 모르거든.
그런데도 이상하게 사람들은 선택하지 않은 길에서는 모든 것이 잘 풀렸을 거라고 가정해.
심리학에서는 이걸 후견 편향(Hindsight Bias) 이라고 불러.
결과를 알고 난 뒤에 “나는 그렇게 될 줄 알았어”라고 느끼거나, 반대로 “그때 다른 선택을 했더라면 달랐을 텐데”라고 확신하는 경향이야.
근데 이건 착각이야.
선택하지 않은 길이 더 좋았을 거라는 증거는 없어. 단지 확인할 수 없을 뿐이야. 그리고 확인할 수 없는 것에는 우리가 원하는 이야기를 채워넣는 경향이 있거든.
생각해보면 후회라는 감정은 굉장히 불공평해.
현실의 실패와 상상 속의 성공을 비교하니까.
반대로 현실의 성공과 상상 속의 실패를 비교하는 사람은 거의 없어.
그래서 후회는 사실 잘못된 선택 때문이 아니라 비교 방식 때문에 커지는 경우가 많아.
멀티버스가 진짜 알려주는 것
많은 사람들이 멀티버스를 이렇게 이해해.
“어딘가에는 성공한 내가 존재한다.”
근데 솔직히 이 말 별로 위로 안 되잖아.
지금 힘든 건 지금의 나인데. 어딘가 다른 우주의 내가 잘 살고 있다는 게 무슨 의미가 있겠어.
오히려 내가 멀티버스라는 개념에서 얻은 건 다른 거야.
현재의 결과가 나라는 존재 전체를 설명하지 않는다는 것.
우리는 너무 쉽게 결과와 존재를 동일시해.
사업이 실패하면 실패한 사람.
연애가 끝나면 사랑받지 못하는 사람.
취업에 떨어지면 능력이 없는 사람.
근데 정말 그럴까?
이렇게 생각해봐.
수많은 버전의 나 중에서 지금 이 버전만이 잘못된 선택을 하고 어려움을 겪는 게 아닐 수 있어. 어쩌면 대부분의 버전이 비슷한 어려움을 겪고 있을지도 몰라. 그냥 삶이 원래 그런 거니까.
실패는 사건이야. 존재가 아니야.
결과는 경험이야. 정체성이 아니야.
우리가 겪은 일과 우리 자신을 같은 것으로 착각하는 순간부터 고통이 커지기 시작해.
자유의지로만 설명하면 생기는 문제
한때 나는 모든 것이 선택의 결과라고 생각했어.
내가 잘 선택하면 잘 될 것이고, 잘못 선택하면 실패할 거라고.
그런데 현실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더라.
같은 능력을 가진 사람도 다른 결과를 얻고,
같은 노력을 해도 다른 결과가 나오고,
심지어 같은 선택을 해도 시기에 따라 결과가 달라져.
생각해보면 인생은 내 의지 외의 변수들로 가득 차 있어.
태어난 환경, 만난 사람, 시대적 흐름, 경제 상황, 예상하지 못한 사건들.
심리학자 배리 슈워츠는 《선택의 역설》에서 이렇게 말했어.
선택지가 많아질수록 후회도 커진다고. 왜냐하면 선택지가 많으면 내가 포기한 것들도 그만큼 많아지고, 결국 어떤 결과가 나오든 “다른 걸 선택했더라면”이라는 생각이 따라오게 된다고.
만약 모든 것을 자유의지로 설명하려고 하면 결국 이런 결론에 도달하게 돼.
“실패는 전부 내 책임이다.”
그렇게 되면 자기반성을 넘어 자기혐오로 가기 쉬워.
그렇다고 운명론도 답은 아니다
반대로 모든 것을 운명으로 돌리는 순간 문제가 생겨.
“어차피 정해져 있었어.”
“운이 없었어.”
“사주가 안 좋았어.”
이렇게 되면 당장은 편할 수 있어. 근데 시간이 지나면 허무해져.
내가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다면 왜 노력해야 할까?
왜 선택해야 할까?
왜 성장해야 할까?
결국 자유의지 100%도, 운명론 100%도 둘 다 사람을 무너뜨릴 수 있어.
그 사이 어딘가가 있어야 해.
내가 통제할 수 없는 것들이 분명히 있다는 걸 인정하면서도, 그 안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찾는 것. 이게 생각보다 훨씬 어렵고, 그래서 더 가치 있는 태도야.
그래서 중요한 건 자기회복성이다
나는 점점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능력은 판단력이 아니라 자기회복성이라는 생각을 하게 됐어.
왜냐하면 판단은 언제든 틀릴 수 있거든.
아무리 현명한 사람도 틀린 선택을 하고, 아무리 준비된 사람도 실패할 수 있어.
그런데 어떤 사람은 그 실패 이후에 무너지고, 어떤 사람은 다시 일어나.
그 차이가 뭘까?
나는 자기 자신을 결과와 분리할 수 있느냐의 차이라고 생각해.
실패했지만 실패자는 아니다.
거절당했지만 가치 없는 사람은 아니다.
잘못된 선택을 했지만 잘못된 인간은 아니다.
이 구분이 생각보다 중요해.
그리고 이 자기회복성은 타고나는 게 아니야.
연습할 수 있어.
가장 간단한 방법은 결과가 나쁠 때 스스로에게 물어보는 습관을 만드는 거야.
“나는 지금 결과를 보고 있는 건가, 아니면 나 자신을 보고 있는 건가?”
이 질문 하나가 생각보다 많은 걸 바꿔줘.
잘못된 선택을 했다고 느낄 때 해야 할 3가지
만약 지금 “내가 잘못 선택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면 이것부터 물어봤으면 좋겠어.
첫 번째, 정말 내가 잘못 선택한 걸까? 아니면 결과가 좋지 않았을 뿐일까?
이 둘은 완전히 다른 이야기야. 선택 자체가 나빴을 수도 있지만, 좋은 선택을 했는데 결과가 안 좋을 수도 있어. 특히 불확실한 상황에서는 최선의 선택이 최선의 결과를 보장하지 않거든. 포커를 잘 쳐도 패가 안 좋으면 질 수 있는 것처럼.
두 번째, 그 당시의 정보로 다른 선택을 할 수 있었을까?
대부분은 아닐 거야. 우리는 그 순간 알고 있는 것, 느끼고 있는 것, 가진 것으로 최선이라고 생각한 선택을 했으니까. 지금의 눈으로 과거를 판단하는 건 시험지 정답 보고 “왜 틀렸어”라고 하는 것과 똑같아.
세 번째, 지금 내가 통제할 수 있는 건 뭔가?
과거의 선택은 바꿀 수 없어. 근데 지금 이 순간의 선택은 바꿀 수 있어. 후회에 에너지를 쓰는 것보다,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것에 에너지를 쓰는 게 훨씬 생산적이야. 당연한 말처럼 들리지만 막상 실천하는 사람은 많지 않더라.
결국 우리가 믿어야 하는 것
사주를 믿든, 점성술을 믿든, 끌어당김의 법칙을 믿든, 아무것도 믿지 않든, 결국 우리는 같은 문제 앞에 서게 돼.
“내가 지금 잘 가고 있는 걸까?”
그리고 아마 이 질문에 대한 완벽한 답은 평생 얻지 못할 거야.
근데 괜찮아.
어쩌면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건 미래를 미리 아는 능력이 아니라, 미래를 몰라도 다시 선택할 수 있다는 믿음일지도 모르니까.
나는 멀티버스가 진짜로 존재하는지 알지 못해.
사주가 미래를 정확하게 보여주는지도 확신할 수 없어.
하지만 한 가지는 확실히 알 것 같아.
현재의 결과가 내 존재 전체를 정의하지는 않는다는 것.
그리고 그 사실을 잊지 않는 한, 우리는 언제든 다시 선택할 수 있어.
잘못된 선택을 했다고 느끼는 순간에도, 그 선택이 우리 전부가 아니라는 것.
그게 내가 멀티버스에서 얻은 가장 중요한 교훈이야.
